"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눅 9:23)
주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누구라 하든지 당신에게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제자들은 주님을 통해 이스라엘 나라가 즉각적으로 회복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런 영광스러운 왕으로 오시기에 앞서 죽음이라는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고 주님이 부활하신 이후에야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은 뭔가를 부정하고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의 딸의 아들로 불리기를 ‘거절’했을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을 때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관계가 없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부인하다’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관계입니다. 즉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은 ‘나와 내가 관계없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관계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구원받기 전의 자신’을 가리킵니다. 구원받기 전의 소욕, 우리의 욕구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 교회와 예수님때문에 오히려 박해를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옳다 말하고 굳게 붙들었던 가치관을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좋은 성품은 자기를 부인하는 자들에게만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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