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딤후 1:12)
인생의 제일가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죄에 빠진 인생은 영광과 즐거움의 방향을 바꾸어 자신을 영화롭게 하고 자기를 즐겁게 하는 삶을 산다.
하나님은 막힌 담을 허시고 우리와의 친밀한 교제를 위해 그 아들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보내셨다. 구원은 단지 우리가 지옥에서 천국으로 탈출하는 정도가 아니다. 지금 여기 발 딛고 선 땅에서부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즐거워하는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자신도 그 효능을 믿지 않는 상품을 파는 사람과 같다. 과연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갈망하는가,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의존하고 있는가. 우리의 기도생활을 보면 그의 영적인 상태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나 그를 믿고 살아가는 성도의 삶은 어떤 것인가? (마 6:25-34) 연약한 인생은 늘 먹는 것과 입는 것과 마시는 것 때문에 욕심을 내고 염려한다. 이 욕심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이 염려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으로 전환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구세주의 유일한 정체성을 온전히 깨닫고 이해하는 일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쩌다 만난 사람일 뿐이라면 그런 예수님을 믿을 수는 없다. 믿음은 모호하고 일시적인 종교적 소망이 아니라 그분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다. 그리스도께서 이생에서의 삶과 내세에서의 삶을 모두 보호해 주실 것을 확신할 수 있었기에 바울은 자신의 몸과 영혼을 예수님께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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