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혹 목숨을)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 (마태복음 6:26-27)
그리스도인은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긴다. 목숨을 위하여 육신의 문제에 대한 염려는 공중의 새를 보고 배우라고 하였다.
새는 심지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나뭇가지에 앉아 먹을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부지런히 이리저리 날아가서 먹이를 주워 먹는다. 이것을 믿음의 날개라한다. 오늘도 부지런히 날아 움직이면 어딘가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새에게는 있다.
우리가 염려한다고 해서 목숨을 한 자나 더 연장할 수 없는데도 우리의 대부분의 염려는 육신적이다. 그리스도인이 해야할 염려는 따로 있다.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찌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디모데전서 3:7)
그것은 더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한 염려,이것이 바로 신령한 염려이다. 오늘날 우리가 더 주님 앞에 가까이 가는 문제로 고민해야 하고 외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염려하라.
그리스도인의 인격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