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 (막 4:23-24)
23절에서 "듣는다"로 번역한 말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사용하신 이 말의 헬라오는 "아쿠오" ἀκούω (akouó) 입니다. 그 말의 일차적인 의미는 "깨달음을 가지고 듣는다"는 뜻입니다.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마 15:10)
듣는다는 말을 제대로 번역해 놓으면, "듣고 깨달을 귀가 있는 자는 깨달을지니라"는 뜻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무엇을 듣고 깨달을 것인지도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너희의 헤아리는(너희가 주는) 그 헤아림으로(깨달음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막 4:23)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어느 정도의 깨달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당신의 받을 수 있는 능력이 확대되기도 하고 제한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깨닫는 게 적으면 적게 받을 것이고, 깨닫는 게 많으면 많이 받을 것입니다. 많이 깨달을수록 많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뭐라고 가르치는 지를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건강을 약속하면 그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병을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필요를 채우시는 방법에 대해 약속하시면 그 약속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늘 부족한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범위를 넘어서 그 이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삼 2절)
이 구절을 주목해 보면 당신이 형통해지려면 당신의 영혼이 먼저 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영혼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당신의 깨달음"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이 말한 이 구절을 풀어 말하면, "사랑하는 자여 무엇보다도 네 깨달음이 증가함에 따라서 네가 형통하고 건강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가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우리에게 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을 앎으로써만 가능합니다.(벧후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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