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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휩쓴 성령의 불길<1제1편>-조나단 고포드-

 level img 관리자
2010.02.20 08:11:25 :9955 

 


 



그러므로 그 부흥에 관해서, 나는 글을 쓰기로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을 위해서 지금까지 일했다는 것이 너무도 적은 나로서는 한국 교인들이 이룩한 일들과 희생인 생활들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수그러질 정도입니다.


중국 신도들에게 내가 한국 부흥 이야기를 하면 그들이 주저앉아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이 책을 읽는 그대가 「구속 받은 자」됨을 알고 또한 한국에서 일어난 복음의 큰 승리에 관한 이야기를 경청하게 된다면 참으로 부끄러워 겸비해질 것입니다.


1907년은 큰 부흥의 해였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중요한 선교 본부 여덟 곳을 내가 방문했던 것입니다. 중국에 돌아오자 봉천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그 사실들을 말했더니 모두들 깊은 감동을 받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페이태 호를 찾아가서 한국을 주님께서 축복해 주신 양상을 그곳 선교사들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중국 땅에도 그와 같은 축복이 임할 때까지 기도를 계속하겠노라고 눈물을 흘리며 서약하는 선교사들도 있었습니다.


그 후에 또 다른 보양지인 치긍산을 방문하도록 초청 받아 거기서도 한국에 관해서 말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주일날 밤 그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이야기를 마쳤을 때 나는 아차 내가 너무 오랫동안 말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즉시 축도를 함으로써 폐회를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회중은 부동자세로 굳어진 채 한 사람도 움직이지를 않았습니다. 무거운 침묵이 그 장내를 사로잡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침묵이 6, 7분간쯤 계속되더니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되어 울음바다를 이루어 놓고 말았습니다. 지은 죄들은 자복 되었으며 악한 분노, 분쟁한 일 등등은 상대방에게 용서를 빌게 되었습니다. 폐회가 된 것은 늦은 밤이었으나 모든 사람들이 한가지로 느낀 것은 정결케 하시는 성령님이 우리들 중에서 불같이 역사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나흘 동안은 수양회와 기도회로 가졌습니다. 그것은 선교사들 사회에서 내가 일찍이 보지 못한 가장 놀라운 은혜의 때였습니다. 중국 교회가 부흥되기까지 날마다 오후 네시에 우리들은 기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해 가을에 하나님의 능력이 백성들 중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1908년 초 이후에 만주와 기타 등지에서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이 증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국에서의 부흥은 1903년에 처음으로 임하게 된 것입니다. 동해안 원산에 있는 하디(Dr.Hardie)박사는 선교사들을 위해서 열리도록 되어 있는 조그만 수양회에서 기도에 관한 설교를 미리 준비하도록 의뢰를 받았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을 비롯하여 또 다른 성경 구절들에 의해서 교재를 준비하던 중, 하디 박사는 성령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기도에 관해서 하디 박사가 설교할 때에 모든 선교사들이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한국 신도들이 수양회로 모였는데 현저한 감동이 거기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하디 박사가 한국 전역에 있는 선교 본부 10군데를 심방하면서 기도에 관한 설교를 하였던 것입니다. 1904년에는 한국 사람 10,000명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시작된 부흥은 1906년까지 영적 결실을 힘있게 계속했던 것입니다.


1907년 6월 평양에 있는 스월른(Swallen) 목사는 보다 큰 일들이 한국에서 생기게 된 경위를 다음과 같이 내게 말해 주었습니다.


1906년 중간 무렵까지 우리들이 이미 경험했던 이상의 축복을 한국 땅에서는 기대하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한국 땅에서 우리들이 수고한 결과를, 중국 일본 등지에서 생긴 결과와 비교해 볼 때, 우리의 수확고가 엄청나게 우월한 것을 볼 때에 이미 우리가 받은 것 이상의 복은 아마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1906년 9월, 우리들은 서울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뉴욕에서 온 죤스톤 박사가 인도 카시아(Kassia Hills) 지방에서 일어난 부흥에 관해서 우리들에게 말해 주면서 1905~1906년 두해 동안에 8,200명이 회심하고 세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선교사들은 겸비한 마음으로 평양에 돌아왔습니다. 그 당시 감리교와 장로교 선교사들 약 20여명이 평양에 주둔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차별대우하시는 분이 아니므로 평양에서보다 카시아 지방에서 더 큰 축복을 부어 주시려 했던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보다 큰 축복이 임할 때까지 정오시간을 기도회 시간으로 가지자고 우리들은 결의하게 되었습니다.


한 달 동안 기도회를 가지 후에 어느 형제가 그 기도회를 중지하자고 제안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한 달 동안 기도해 왔으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많은 시간만 허비했습니다. 우리들이 옳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원상으로 돌아가서 우리들의 선교사업을 계속하며 각각 집에서 편리한 시간에 기도를 올리도록 합시다.” 그 제안은 그럴듯하게 들렸습니다. 그러나 인도 카시아 지방에 허락하신 일을 평양에도 주실 것을 믿으면서 대다수의 선교사들은 그 기도를 계속할 것을 결정했던 것입니다.


기도시간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기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기도회 시간을 정오에서 하오 4시로 변경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저녁 식사 때까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기도를 계속했던 것입니다. 기도하는 일에만 중점을 두고, 간혹 격려될 만한 것을 어떤 사람이 말하고자 한다면 여러 사람들이 기도를 계속하는 중에 흡수되어졌습니다. 그들은 4개월 동안이나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감리교 선교사, 장로교 선교사라는 교파 관념을 초월하는 결과가 따라왔으며,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하나’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참된 교회연합이었습니다. 그러한 연합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중에 생겨지는 일이며, 또한 오래 지속할 수 있으며, 그러한 연합은 지극히 높으신 분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법입니다.


그 무렵에 스윌른 목사님은 블레이어(Blair) 목사님과 함께 시찰 구역 내에 있는 시골 교회 한 곳을 방문했습니다.


의례적인 방법으로 예배를 인도하고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울면서 죄를 자백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월른 목사님은 그러한 기현상은 일찍이 본 일이 없노라고 말하면서 그 청중을 휩쓸고 있는 강렬한 감정을 억제해 보려고 찬송가 중 한 곳을 지정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여러 차례 그러한 노력을 시도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모임을 어떠한 다른 분이 임하사 주장하고 계시는 사실을 두려운 마음으로 깨닫게 되자, 스월른 목사님은 사회권을 그 분에게로 양도하고 가능한 한 자기는 뒤로 멀리 물러서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두 분 선교사는 기쁜 마음으로 평양에 돌아가서 주님께서 그 시골 교회를 심방해 주셨던 양상을 보고했습니다. 다같이 하나님을 찬송하며 평양에 은혜를 부어주실 날이 눈앞에 임박한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1907년 정월 첫 주간이 돌아왔습니다. 북한 전역에서 약 700명의 열렬한 기독교인들이 평양에 회집하여 특별한 연차 수양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주간에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은혜를 내려 주실 것으로 누구나 다 큰 기대를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별 의미 없는 한 주간이 지나가고 마지막 날 정월 8일은 주일날이었습니다. 그 주일날 낮 예배에도 역시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이 나타난 바가 없었습니다.


그 주일날 밤 예배는 장대현 장로교회에서 약 1,500명 신도가 운집했습니다. 천정은 놋으로 덮인 듯, 기도는 상달되어지질 못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각각 흩어져 소속된 자기 교회로 돌아갈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신을 부어주시도록 그처럼 올린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못 들으신 척 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그 때에 그 교회의 유력한 장로, 길선주씨가 일어서서 자기 죄를 자백할 때에 회중이 모두 크게 놀랐습니다. “나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실 수가 없었습니다. 약 1년 전에 내 친구 중 한 사람이 임종시에 나를 자기 집으로 불러 말하기를 ‘길장로, 나는 이제 세상을 떠나지만 내 집 살림을 돌보아 주시오. 내 아내는 무능하니까 말입니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내가 잘 돌보아 드릴 테니 염려 말라고 나는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그 미망인의 재산을 관리하던 중 미화 100불상당의 금액을 나는 사취했던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해 온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 그 돈 전액을 그 미망인에게로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무겁게 짓누르던 방해의 장벽은 별안간 무너져 버리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해 주셨음이 알려졌습니다. 죄책감이 그 청중을 휩쓸고 말았습니다. 그 주일 밤 예배는 7시에 시작되었는데 다음날 새벽 2시까지도 끝나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 수다한 교인들이 일어선 채로 울면서 자기 죄를 자백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그일 후 날마다 연이어 신도들이 모여 들었으며, 정결케 하시는 영이 언제나 그 성전에 계시다는 일이 분명했습니다. 인간들이 무엇이라고 악평을 하더라도 이 자백들은 인간의 힘에 의해서 지배되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귀의 소행이냐, 그렇지 않으면 성신께서 역사해 주심이냐, 양단간에 하나임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의 빛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 유력한 길선주 장로의 죄를 자백시킨 것이 마귀의 소행이었다고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숨겨진 죄가 있는 동안에는 전능하신 하나님도 방해를 받으셨으며 죄가 자백되어지자 즉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 해에 한국에서 고백되어진 일들이 약간의 예외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귀결되었던 것입니다.



몇 가지 실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의사는 자기 집 요리사가 가장 정직한 사람이라고 자랑을 하곤 했습니다.(동양에서는 요리사가 시장에 가는 책임도 지게 된다.) 그러나 그 요리사가 죄책감을 받아 다음과 같이 자백했습니다. “지금까지 항상 나는 우리 주인을 속였습니다. 내 집도, 내 토지도 주인을 속임으로 장만한 것입니다.” 그는 가산을 정리하여 자기 주인에게 보상했습니다.


어떤 교사는 선교회를 위해서 약간의 대지를 구입하도록 위탁을 받았는데 그 대지를 마련해 놓고서는 대금이 500불이라고 했습니다. 너무 비싸다고 반대 의사를 표시하면서도 선교사는 청구액대로 500불을 지불했다. 그 부흥 기간 중에 그 선생은 자백하기를 그 대금을 80불 밖에는 지불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소유물들을 다 정리하여 속였던 나머지 부분 420불을 보상해 주었습니다.


종군기자 맥켄지씨에게 고용인 소년이 있었는데 4불 미만의 금전으로 주인을 속였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죄책감을 받게되자 18마일이나 되는 길을 걸어가서 어떤 선교사를 찾아가 그 돈을 맡기며 맥켄지씨에게 전달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4불을 받아 들은 그가 한국 기독교에 대해서 신임했었음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드디어 평북 의주에 부인과 한 아들을 가진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식구를 두고 다른 도시에 가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다른 여자를 취하여 두 딸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의 심령이 부흥을 받을 때에 둘째부인과 그 딸의 부양비를 주기로 합의하고 의주에 돌아와 본부인과 다시 화합하게 되었습니다. 이혼이 성행하는 어떠한 기독교 국가에도 이와 같이 한국에 있었던 것과 같은 부흥이 일어나게 된다면 경이적인 사회 변동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거의 온전한 성도라고 존경을 받던 남자집사 한 사람은 부흥이 진행됨에 따라서 퍽 불안해 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선기금 얼마를 절취했다고 자백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크게 놀랐지만 그가 이제는 마음의 평온을 얻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욱 괴로워하면서 겸비해지더니 제 칠계명을 범했노라고 자백했습니다.


어떤 부인 한 사람은 며칠동안 지옥의 고통을 경험하는 듯이 보이더니 어느날 공예배 좌석에서 자기는 음행죄를 범했노라고 자백했습니다. 사회를 보던 선교사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남편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혹 그 남편이 그녀를 죽이게 되면 그가 국법에 의해서 처벌될 것을 알았던 까닭입니다. 그런데 그 남편은 눈물을 흘리면서 범죄한 부인 옆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더니 그녀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그 예수님께서 오늘 이 여인에게도 동일한 말로 말씀하실 때 영광을 크게 받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특이한 사건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끼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교회들은 초만원을 이루었습니다. 조롱할 목적으로 왔던 사람들이 두려움으로 기도하기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강도단 두목이 빈둥거리는 태도로 호기심을 갖고 집회에 나왔다가 죄책감을 받아 회심했으며 곧장 치안관에게 달려가서 자수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놀란 그 관리는 대답하기를 “너를 고발하는 자가 없는데 네가 네 자신을 고발하는구나. 한국의 법률로서는 네 사건을 처리할 수가 없다”고 말하면서 그를 돌려보내었습니다.


그 부흥 당시에 일본인 관리 한 사람이 평양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서구의 불가지론 사상을 흡수했던 사람인고로 영적인 일들을 경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수다한 한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언어가 잘 소통되지 않는 몇몇 일본 사람들에게까지도 이상스러울 정도로 계속해서 변화가 더욱 더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그 사실에 너무도 당황하여 실태를 조사해 보려고 그 집회에 참석했던 것입니다. 드디어 그의 불신앙적 태도는 사라지고 그도 또한 주 예수를 모시는 결과가 오게 되었습니다.



스윌른(Swallen) 목사님이 말하기를 “5, 6개월 동안 기도했던 일은 보람 있는 일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니 우리 선교사들이 반년동안 해 온 일보다 더 큰 일을 반일동안에 완성해 주셨습니다. 두 달이 채 못 되었는데, 2,000명 이상의 죄인들이 회심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첫째 위치에 모시게 되면 언제든지 그런 결과가 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컫는 교회들이 일반적으로 교회 활동에 바쁘게 지내다보니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심을 기도함으로써 기다려야 할 신앙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1903년에 시작된 부흥은 일취월장(日就月將)으로 부흥을 계속하더니 평양을 중심으로 발원(發源)하여 대대적으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1907년 중간 무렵까지 30,000명 회심자들이 평양을 중심으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평양 시내에 4,5개의 교회가 있었습니다.


장대현 교회는 빽빽하게 앉으면 2,000명을 수용할 정도였습니다. 한국 교회에는 의자가 없고 신도들은 마루위에 펴놓은 돗자리에 앉게 됩니다. 평양 장대현 교회는  2,000명이 회집하게 되면 입추(立錐)의 여지가 없게 된다는 것이었으니 더 이상 수용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인 신도들이 먼저 예배를 마친 후 남자 신도들이 제2부 예배를 드리는 방법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 부흥은 1910년까지 계속해서 쇠할 줄을 몰랐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해 10월 달에는 일주간 동안에 4,000명이 세례를 받았으며 기타 수천명이 신앙 결심서를 보내왔습니다.


평양에서 남하하면 개성(開城)을 지나게 되는데 그곳은 고려시대의 도읍지였습니다. 1907년 부흥의 때에는 500명이 증가되었으며 1910년에 있었던 한  달 동안의 특별 성회에서는 2,500명이 회집했던 것입니다


1907년에 우리가 서울을 방문했을 때는 교회마다 만원이었습니다. 어느 선교사가 말하기를 6주간 전도 여행에서 500명에게 세례를 베풀고 700명을 학습 교인으로 세웠으며 시찰 구역내의 5개 교회가 일년이 지난 후에는 12개 교회로 증가됐다는 것입니다.


1910년 서울에서 결심서를 제출한 사람이 13,000명이었으며 그 해10월, 서울 시내 감리교회에서는3,000명이 세례를 받고 교회에 입교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서해안 쪽으로 제물포(濟物浦:인천)란 항구가 있는데 그 곳 감리교 선교회에서 1908년 800명 신도가 있는 하나의 교회를 갖고 있었습니다. 인천 대안에는 인구17,000명을 헤아리는 하나의 섬이 있습니다. 본래 그 섬에는 세례교인이 4,247명이 있었는데, 1907년에는 전체 인구의 반 이상이 교회에 나오게 되었으며, 그 섬 전체가 주님의 소유가 되기를 교우들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아담스(Adams) 선교사의 말에 의하면 남부지방 주요도시인 대구(大邱)에서는 10일 동안 기도회를 갖도록 교우들이 제안했었는데 제7일에 성신께서 홍수처럼 임하사 그들을 부흥시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써 교회자리는 비좁아지고 그 지역 일대의 교회들은 우후죽순(雨後竹筍)과 같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905년에는 회심자 1,976명을,1906년에는 3,867명을 1907년에는 6,144명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아담스 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지금은 내가 일찍이 가보지 못한 지방에까지 교회들이 섰으며 전도자들이 아직 방문도 못해본 교회들이 생기에 되었습니다. 어떤 교회는 선교사나 전도자 없이도 형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대구(大邱)시에서 복음을 들은 어떤 사람은 성경 한권을 구해가지고 고향 마을로 돌아가서 이웃 사람들에게 그것을 계속 읽어주던 중 50명의 신도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성서를 보다가 그들은 추리(推俚)한 끝에 물로 씻는 세례를 받아야 교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추론(推論)을 실지로 적용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상의한 끝에 각각 집으로 돌아가서 목욕한 후에 다시 모여서 교회를 형성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런 일을 기뻐하셨다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1907년 내가 방문한 또 하나의 지방은 평양북부 철도연선(鐵道沿線)에 있는 선천(宣川)입니다. 선교사가 배치 된지 겨우 8년 밖에 안 되는 아직 어린 기독교 도시이기에 신도가 많을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실지로 우리가 그 곳에 찾아갔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려 15,348명이나 되는 신도가 선천읍 일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신도란 말은 교회에 출석하며 헌금을 바치는 사람을 말합니다. 1,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회가 바로 완공을 본 때였습니다. 1년 전에는 800명 수용의 교회였는데 신도수는 87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를 증축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1907년 1년 동안에 중앙교회는 시골 교회 다섯을 세웠으며 그 교회 건물이 완공될 때에는 1,445명 신도로 증가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중앙교회로부터 전도를 받은 거리거리에는 불신가정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리 기독교 국가들에서는 “교회 가까이 살면 은혜에서는 점점 멀어진다.”는 말이 있을 형편이므로 교회 근방에 불신가정이 없는 한국 교회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오직 나는 그 이유를 다음 사실로서 입증할 수가 있습니다. 한국 신도들은 성령께서 존귀와 영광을 돌리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처럼 능력 있게 모범생활을 하고 있는 고로,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망을 받게 되는 까닭이라고 하겠습니다.


1916년에 한국 동해안으로부터 온 선교사 푸트(Foote)목사는 다음과 같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최근에 그 곳 선교부 지역에서 주일을 지냈다는 것입니다. 그 주일밤 예배는 증축한 제일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2,500명의 회중으로 초만원을 이루었으며 시내의 다른 교회에서는 500명이 회집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의 총인구가 3,000명이므로 시민 전체가 그날 밤 예배에 참석했음이 틀림없었습니다. 기독교 혜택의 놀라운 축복을 받은 나라들에서는 집회의 자유의 특권을 별로 고맙게 생각지 않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언제가 주님께서 공정하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선교 본부로부터 외촌(外村)으로 선교사업이 확장되는 상황을 알고 싶어서 나는 블레이어(Blair)목사님께 담당군(郡)가운데 하나의 약도를 요청했습니다. 기차 시간이 임박해 있어 서둘렀습니다. 그는 용천군(龍川郡)의 약도를 그렸습니다. 그 곳은 압록강 하류 서해바다에 접한 곳입니다. 그 약도의 복판에 350명 교회를 표시하고, 거기서 북방 1마일 지점에 250명 교회를, 동북방 5마일 지점에 400명 교회를, 동방 2마일미만 지점에는 750명 교회를, 표시하는 등 용천군내에는 자립교회가 14곳이나 있었습니다. 내 옆에 서있던 휘트모어(Whittemore)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용천군은 제가 일하고 있는 북쪽 지방에 미치지 못합니다. 거기는 5,000명 이상의 신도가 있으며 그들은 35개의 자립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교인들입니다.” 400명 회집하던 지역에 다음해는 3,000명으로 격증된 곳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1884년에 선교사업이 시작된 이래 밤이나 낮이나 매 45분마다 한 사람씩 교회에 입교하게 된 셈입니다. 그 지방전체가 기독교화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숫자가 많은 것만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주님을 추종했으나 바로 그들이 주님을 실망 시킨 일도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또 그것은 중요한 점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이제 어떠한 표준을 적용해야 하겠습니까? 사도행전 첫 부분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봅시다. 사도행전 표준을 문자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시키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하더라도 한국 교회에 그 표준을 적용시키는 일에는 기쁘게 찬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한국 교회가 어떤 양상으로 오순절 표중에 들어맞는가를 살펴보십시다.


제 1세기 초대 교회는 성령님을 크게 존귀히 여기며 만사를 제쳐놓고 성령강림을 위한 준비기도를 10일간이나 계속했던 것입니다. 내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수개월 동안을 날마다 1시간 내지 5,6시간을 선교사들은 성령충만을 목적하고 준비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인도땅 카이사(Kassia)사람들에게 폭주되는 양상을 죤스톤 박사(Dr .Howard Agnew Johnston)로부터 선교사들이 듣고 있을 때에 평북 강계(江界)로부터 온 성경 행상인(行商人)

한 사람도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가 고향에 돌아가서 강계 교회 250명 신도들에게 말해준 것은 주 예수께서 이루신 사업을 성령께서 홀로 실효 있게 해주시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다른 은사들과 같이 성령을 선물로 받도록 약속되어져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1906~7 양년에 걸쳐 가을에서 동안 저녁 5시가 아닌 새벽5시에 신도들이 교회에 모여 새벽기도회를 가짐으로써 하나님을 공경하며 성령의 은사를 감득(感得)했던 것입니다.


6개월간 그들은 하나님 곧 성령님을 높이 공경했더니 성령께서 홍수처럼 임하셨습니다. 그일이 있은 후 신도 수는 계속하여 배가(培加)가 되었습니다. 거짓됨이 없이 우리 모두가 솔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우리가 정말로 믿고 있는 것인가?


구주의 공로를 전파하는데 불타는 열심을 내는 오순절 날을 교회 특색이라고 하겠습니다.

한국  교회가 또한 그러합니다. 기독교인의 불타는 전도의 열심은 불신자들에게 괴로움을 줄 정도가 되어 그들이 감당할 수가 없다고 불평하였다는 것입니다. 신도들은 언제나 주 예수 에 관해서 강력히 생각하여 기독교인들이 없는 곳으로 옮겨가서 편안히 살아봐야겠다고 말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평양에 있는 선교사들은 그들이 운영하는 고등학교(숭실학교)에서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영화롭게 했습니다. 재학생 318명을 가진 그 학교에서 1907년 2월 개학하는 월요일 아침 담당 선교사 두 사람은 일찍이 교장실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개학 초부터 주장해 주시기를 그들은 원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알기에는 성령께서 주장해 주시지 않으면 한국 땅에 위협을 주는 교양있는 불량배(不良輩)를 양성하는 기관에 지나지 아니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 국가에 사는 우리들은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성령께서 주장주시기를 기대하는 점에서 부족합니다. 어떤 학교에서는 지나친 불신앙이 교육되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교양있는 불량배들이 생길 것을 두려워 할 줄 모르고 있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국고금을 횡령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 중 어떤 자들은 언제든지 무죄방면되어지곤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바로 교양 있는 불량배들입니다.


우리나라 대학 졸업생들 중 다수의 사람들은 눈앞에 하나님을 경하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은 성령이 주장하시도록 위임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기 때문에 우리 죄가 우리들을 찾아오게 된 사실을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어야 하겠습니다.


평양고등학교(숭실학교)에서는 개학할 월요일 아침 9시가 되기 전에 성령께서 그 남학생들을 죄책감으로 강타하게 되었습니다. 윗 층이나 아래층에서 죄를 애통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조금 후에는 교장실이 애통하는 남학생들로 꽉 차게 되었습니다.


그 날 학교는 개학할 수 없었으며 그 이튿날도 그러했고 금요일 역시 열려질 수가 없었습니다. 금요일 저녁까지 장로교 남학생들은 전적으로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감리교 남학생들은 무엇인가에 구애를 받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 금요일 밤에 진상(眞狀)이 다 폭로되었습니다. 감리교회에서 약 12명 학생들이 그들의 목사님을 찾아가서 목사님과의 약정(約定)한 일을 풀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부흥이 감리교에서 시작되질 않았다는 이유로 해서 그 목사님은 시기하는 마음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남자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그런 부흥회를 반대케 하였으며 또 공중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일은 마귀로부터 기인한 것이라 하여 항거하라는 약정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금요일 밤에 이르러 학생들은 마음의 약정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는 형편이었으므로 그러한 약정에서 해방시켜 달라는 청원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선교사들의 발 앞에 엎드려 자백하기를 부흥이 장로교회에서 시작됐다는 이유로 해서 마귀가 그 마음속에 시기심을 가득히 채웠다는 것입니다.


어느 선교사가 나에게 한 말인데 그 주간에 쥐어짜는 듯한 고통을 주는 고백들을 그 학생들로부터 듣는 일은 매우 두려운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지옥 뚜껑을 열어 놓은 것 같았으며 상상해 볼 수 있는 온갖 죄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주간 월요일 날까지는 그 학생들이 하나님과 선생님들과 학우들간에 올바른 관계를 갖게 죄었으며 그 학교는 성령께서 주장해 주시는 가운데 개학이 되었던 것입니다.

바고 그 무렵 감리교 선교회에 소속된 약 100명의 전도사들과 성서 행상들이 1개월간을 공부 공부하려고 평양에 모였던 것입니다. 연합기도회를 드리던 중 그 선교사들은 그 중요한 모임을 성령께서 주장하시도록 일임해 버린 것입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만군의 여호와의 신으로서만 되는 것을 그들은 알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했으며 하나님께서는 바로 첫 집회에서 그의 임재하심과 능력을 나타내심으로서 그들에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며칠 후에는 삐뚤어진 일들이 바로 잡혔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주장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효과적인 교육을 받았으며 한달이 거의 끝날 무렵에는 용감한 개척자들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수일이 지난 후에 시골에 있는 장로교회 부인신도들 550명이 선발되어 12일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려고 평양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모든 비용을 자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 중 두 사람은 그 집회에 참석하려고 5일 동안 걸어서 왔던 것입니다. 한 어머니는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5일 동안을 걸어왔습니다.


선교사들과 평양에서 부흥을 경험한 지도자들은 영적 능력에 관한 어떤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하면 이것은 인간의 탓이지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알기로는 성령께서 언제든지 인간을 도구로 쓰시기를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도구를 통해서 성령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첫날 밤 그들은 성령께서 주장해 주시기를 간구했던 것입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약속이행을 잘 하시는 분이심으로 성령이 임하자,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책망하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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