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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을 믿음 - J. A. 스튜와트 -

 level img 관리자
2010.02.20 07:11:28 :2734 

 

 

―  J. A.  스튜와트 ―

“그 자체가 위대한 산 기적이신 성령이 땅 위에 거하시고 일하시고 계시는 동안에는 교회의 가능성은 언제나 초대교회 시대와 동일하다.”  

“정상 이하의 위축된 교회는 거룩하시고 능력 많으신 하나님께 대한 모욕이요 수치거리다.” (J.A.S.)

 

 

 

 

 


부흥의 시대는 이제는 지나갔다고 믿는 성실한 하나님의 성도들이 많다.


  그들은 이런 단정의 근거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말세에는 고통하는 때가 온다”는 것이 예언되었음을 본다.  즉 말세에는 믿음도 전체적으로 후회하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복음은 옛날대로 구원하는 힘을 조금도 상실하지 않으나, 말세에는 구원 받는 사람들은 여기서 한사람, 저기서 한 사람씩 모아 드려질 뿐이요,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는 성령이 물과 같이 부어지는 강림은 다시 없으리라고 그들은 믿는다.  그러므로 교회가 큰 부흥 역사를 기대하거나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전혀 하나님의 섭리와는 맞지 않는 일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런 가르침은 비정상적 교회를 만드는데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해독을 끼쳤으며, 바로 그들 사이에서 부흥이 일어날 수 있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성도들이 기도하는 대신에 도리어 그들의 나라를 조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주위에는 신앙을 부정하는 사태들을 많이 본다.  큰 교단들의 대부분이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1:8에서 경고한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다.  너무나 많은 신교의 교직자들이 우리의 역사적 기독교 신앙의 기본요소들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부흥의 날은 지나가버리지 않았다고 우리는 주장하는 바이다.  그 자체가 위대한 산 기적이신 성령이 땅 위에 거하시고 일하시고 계시는 동안에는 교회의 가능성은 언제나 초대교회 시대와 동일하다.  우리의 거룩하신 보혜사는 결코 떠나가시지 아니하셨으며, 그는 지금도 깨끗하고 순종하는 그릇들을 통하여 역사하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로버트 씨 맥퀼킨(Robert C. Mc QuilKin) 박사는 이런 경고를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지 말자.  이 말세에 성령의 신선하고도 위대한 강림을 기대하는 일에서 실족하지 말자.”


  대부분의 신자들이 아직도 아는바가 극히 적은 초자연적인 능력이 아니고서는 원수의 압도적인 힘을 피할 수 있는 것은 달리 없는 날이 앞에 다가오고 있다.


  만일 교회가 그 탄생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초자연적인 축복을 받았었다면, 그 교회가 하늘로 옮기어 가기 전 이 땅 위에서의 마지막 날에 처음보다도 더 큰 초자연적 축복을 못 받으리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지금도 세계의 곳곳에서 사모하는 친 백성들의 요구를 들으시고 부분적인 부흥을 주시고 계시는 사실 자체가 이 말세에는 하나님이 부흥을 주시지 않으리라는 교훈이 그릇된 것임을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의 사업과 그의 백성들을 다른 곳들에서도 부흥시키시고 계시다면, 왜 그대의 교회, 그대의 거리, 그대의 도시, 그대의 나라에서는 아니 하시겠는가?


  하나님의 성도들의 가슴 속에 부흥을 사모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그 부흥이 그들 가운데서 일어날 줄을 믿게 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다.  지금도 도처에서 개인들이나 적은 무리들이 교회의 낮은 영적수준을 근심하여 그들 가운데서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의 시대는 지나간 것이 아님을 충분히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는 분임과 동시에 그는 그의 백성을 만홀히 여기시지도 않으시는 분이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말하였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큰일을 하시려 할 때마다 그는 언제나 그의 백성들을 기도하게 하신다.”


  추수의 주인이신 성령께서 많은 심령들을 일깨우셔서 부흥이 그들 중에서 일어나기를 고대하게 하시고 위하여 기도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성령은 오늘날 교회를 향하여 뜨거운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을 가진 두려움을 모르는 선지자들을 하나님의 포도원으로 보내고 계신다.


  이 거룩한 남녀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들은 듣기에 괴로운 것이며, 뜨뜻미지근한 교회를 책망하고, 잠들어 있는 신자들을 책망하는 말이다.  그 말은 오늘의 비정상적인 신자들의 죄 많고, 이기적이고, 열매 없고, 능력 없는 상태와 타협하지를 않는다.  에스겔과 같이 특별히 기름부음을 받은 사자들은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는 교회에 대하여 하나의 예표로서 세워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거꾸러졌고, 시온의 가증한 것들을 보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그들 자신의 말이 되리만큼 그것을 잘 소화한 그들은 이제 이스라엘의 생활 속에 산 활력적인 말씀의 권화로서 나타나게 된 것이다(겔 12:11).  “그들은 예표의 사람이라”(슥 3:8).


  그들은 그리스도와 같이 못 박혔고, 그들 자신의 감정에는 죽었고, 목이 곧은 백성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다(렘 1:8).


  그들의 설교는 마치 “집주인”이 갑자기 와서 탈선하고 있는 종들의 계획을 다 뒤집어엎는 것과도 같이 솔직하게 성도들을 경고하고 그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부흥을 일으키는 선지자의 말은 결코 인기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은 이렇게 분부하셨기 때문이다.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큰 죄를 고하라”(사 58:1).


  이적의 때가 지나갔다고 우리는 믿을 수가 없다.  오히려 반대로 이 은혜의 세대의 최후 시간이야말로 하나님께서는 압도적으로 능력 있는 방법으로 역사하실 때이다.


  아직도 수많은 영혼들이 그리스도 밖에서 이방의 어둠 속에 누워 있다.


  그리스도의 몸은 완성되어야 하며, 분명히 그의 몸은 모든 족속과 나라와 각국에서 부름 받은 사람들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이 백인들만으로 이뤄지리라는 생각은 냉랭하고 좁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만이 가질 생각이다.


  죽어가고 있는 수많은 이방인들이 단 한 번이라도 복음을 들어보게 하려면 먼저 믿는 교회에서 힘 있는 궐기가 있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 자아만족에서 일깨워 “가라!”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게 할만한 혁명적인 변동인 하나님의 백성들의 가슴과 생활에서 폭발해야만 한다.


  그런데 오늘에도 하나님은 부흥을 보내시기 원하신다고 내가 믿는 가장 큰 이유는 이미 하나님의 구속을 받은 백성들의 생활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세대에도 그의 백성들이 그의 아들의 신부로서의 표준 이하에서 사는 일을 결코 만족히 여기시지 않으셨다.


  “내 성소에서부터 시작할지니라”(겔 9:6).  “너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라”(요엘 2:1).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 등등의 말씀은 하나님은 결코 표준 이하의 교회에 만족하시지 않으심을 우리에게 깨우쳐 준다.


(중략)

 

  우리는 집회에서 『영원하신 말씀 위에 굳게 서리』(399장)를 힘차게 부른다. 그러나, 친애하는 형제 자매여, 우리가 하나님의 존전에 무릎을 꿇고 그 약속을 소유하기 전에는 그 약속 위에 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서 그 약속을 내 것으로  소유하고, 그것이 우리의 경험이 되도록 요구한 후에는 우리는 실제적으로 일어나서 아직도 우리가 소유하지 못하고, 차지하지 못하고, 밟아 보지 못한 하나님의 약속들이 진실로 우리에게서 실현(實現)될 때까지 우리는 걸어 나가야만 한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여호수아1:3)


약속의 땅을 점령하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땅을 그들의 발로 걸어서 종횡(縱橫)으로 재어봐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의 삼분의 일밖에는 척량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그 이상을 소유하지 못하고 말았던 사실은 우리가 기억할 만한 일이다.


그들은 그들이 척량한 그만큼만 소유하고, 그 이상은 소유하지 못했었다.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에게 주신 약속들은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이 약속들은 오늘의 이 패역(悖逆)한 세대에도 그 약속을 주시던 당시와 꼭 같이 진실무망(眞實無妄)하신 약속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의 넓이와 길이를 궁구(窮究)해 본 사람이 우리 중에 몇이나 되며, 모든 것을 능케하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소유하는 사람이 얼마나 적은가!




무디씨가 영국에서 전도운동에 성공한 얘기는 부흥을 구하는 믿음의 기도에 대한 좋은 일례(一例)다.

씨 에이취 스펄죤(C.H.spwrgeon)씨의 글을 읽고 크게 은혜를 받고, 또 조오지 뮬러씨의 믿음의 모험담을 듣고 크게 감격한 무디씨는, 이 두 분을 만나고자하는 뜨거운 소원을 가지고 영국으로 건너 왔었다.

 

우리가 아는 한도 안에서는 이 때에 무디씨는 단 한번 설교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1862년에 그는 다시 영국을 방문하게 됐는데, 그 때는 시카고 대화(大火)때에 타버린 교회당을 다시 건축할 때여서 무디씨는 매우 피곤하였고, 휴식을 원했으며, 집회를 인도할 의사는 당초(當初)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영국에 도착한 후 렛씨(T.Lessey)목사가 시무하던 회중교회(會衆敎會)에서 어느 주일날 설교를 해달라는 강권을 받았었다. 그 주일예배는 그저 평범한 예배로 끝나고 별 다른 청중의 반응도 없었다. 그런데 저녁예배 후에 뜻밖에 많은 사람들이 목사실에 모여 들면서 기대하지 않았던 사대가 벌어졌다.

 

그들이 헤어질 때 무디씨가 광고하기를 목사님이 내일 저녁도 교회의 부속실(附屬室)에 나와 계실 터이니,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찾아오라고 하였다.


다음 날 저녁에 수백명이 교회에 나왔고, 그 뒷날도 이어서 나왔다. 그 모임은 처음부터 이렇게 자연스러웠으며 광고(廣告)나 위원회 같은 것은 없었던 것이다. 무디씨도 그 결과를 몰랐었다. 그런데 이 모임이 어떻게나 강력하게 계속했던지 렛씨 목사는 이미 더브린으로 떠나버린 무디씨에게 전보를 쳐서 제발 다시 와서 이 열매를 같이 거둬 달라고 청했다. 그 결과 이 복음적인 교회 한 곳에만 완전한 새 교인이 400명 더하게 되었다.


무디씨와 렛씨 목사는 이 기대밖의 은혜를 보고, 그 원인을 할 수 없어 궁금했다. 두 사람이 오랜 시간 얘기하면서 그 수수께끼의 비밀을 풀려고 했다. 그들 자신의 믿음도 그런 큰 기대는 못 가졌던 것이다.

 

마침내 그들은 비밀을 알아냈다. 그 교회에 부인 성도 두 분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오랜 병상(病床)에 누워있는 몸이었다. 이들이 오랫동안 무디씨를 이 교회에 보내셔서 그들에게 설교하게 되기를 열심히 하나님께 간구해 왔던 것이다. 무디씨가 처음 설교한 주일 낮 예배 후 한 부인은 달려가서 병상에 있는 친구에게 무디씨가 바로 그들의 교회의 강단에서 오늘 설교했다는 것을 알리는 동시에, 그들은 그들의 기도가 응답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 날 오후  줄곧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찬미하였다.

 

이 조그마한 은혜의 역사가 곧 무디씨로 하여금 전(全) 영국에서 전도를 하게 하는 문을 열었던 것이다.


우리 자신의 교역생활에서도 부흥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어떤 개인이나 신자들의 모임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였는가를 조용히, 경건되게 알아보곤 하였다.


부흥은 훌륭한 설교자의 능변(能辯)을 통해 오는 것도 아니요 큰 조직(組織)의 힘으로 일어나는 것도 아님을 우리는 안다. 그것은 어떤 신자들이 하나님은 그의 언약(言約)을 오늘도 성취시킬수 있음을 감히 믿음으로서 마련된 은밀한 도고(禱告)의 자리에서부터 시작되는바 초자연적이고 자연스러운 하나님의 역사인 것이다. (부흥은 결코 큰 소음(消音)과 큰 군중(軍衆)에서부터 시작 되는 것이 아니다.)


이 복스러운 사실에 관하여 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실례(實例)를 들 수 있다. 하나님이 『새 일』(이사야43:16)을 하실 것을 확신한 소수의 신자들로 인해서 수 많은 교회들이 일제히 놓은 성결(聖潔)의 수준에 올라가는 동시, 수천의 영혼들이 구원 받는 사실도 보았다.



지금은 소련이 편입된 동구의 어떤 도시에서 명백한 이유가 없이 갑자기 하나님이 부흥을 일으키시는 것을 보고 나는 궁금하여졌다.


다른 도시들에서는 수 주간 혹은 수개월의 기도가 있은 후에 그런 부흥이 일어나는데 여기서는 집회를 시작한 날인 금요일 저녁부터 하늘이 열리고 우리는 하늘의 축복에 흠뻑 젖었던 것이다.


아침 성경공부 시간에 1000명씩 모였고, 저녁에는 더 큰 장소에서 수천 명이 전도 설교를 들었다.  믿지 않던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이 모여 들어서 이미 믿던 사람에게는 제공할 자리가 없었다.  나는 그 신자들에게 불신자들이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그들 자신의 교회로 돌아가 달라고 부탁했었다. 매일 저녁 하나님의 검이 불신자들의 마음을 찌르는 데, 그들의 영혼의 갈증은 심히 컸다.


  내가 집회 장소를 떠나곤 하는 것은 자정이 넘어서였고 그나마 이 기이한 현상의 수수께끼를 알 수 없어 잠을 잘 수 없었다.

  나는 이런 사실이 있으리라는 아무런 예감도 소식도 받은 일이 없이 다만 성령의 인도로 이 곳에 날아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집회는 금요일 저녁에 단 7명이 모인 기도회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느 날 저녁 주께서는 고맙게도 그 수수께끼를 나에게 풀어 주셨다. 모여든 수천 명에게 복된 소식을 잘 전할 능력을 좀더 구하려는 생각에서 나는 그 건물의 지하실로 들어갔다.


  나는 어두운 지하실에서 기도를 시작했는데, 얼마 안가서 그 방 안에서 압도적인 하나님의 위엄을 느꼈다.  그 큰 지하실에서 누가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즉각 깨달았다.


  조용히 불을 켜고 둘러보니 그 방의 저 끝에 약 열두어 사람 되는 부인들이 얼굴을 마루에 대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있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위층에서 불신자들 사이에서 하나님이 강력히 역사하시는 동안 그들은 거기서 “휘장 안에 들어가서”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보좌를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아, 부흥을 주시는 하나님을 감히 믿는 강력한 무리들을 하나님이 일으켜 주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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