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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르의 부흥-WEC

 level img 관리자
2010.02.20 08:26:04 :4995 

 

 


 

 

 

티모르섬은 사부 해와 티모르 해 사이에 있는 소(小)순다 열도 동쪽 끝에 자리잡고 있다. 서(西)티모르는 행정상 인도네시아 누사텡가라티무르 주의 일부로 취급되며, 동티모르는 1975년까지 포르투갈의 해외 영토로 있다가 그해 11월 28일 동(東)티모르 민주공화국으로 독립을 선포했다. 이 신생독립국은 곧이어 12월 7일에 시작된 인도네시아의 침략을 받아 1976년 인도네시아의 티모르티무르 주로 선포되었다. 그 후 2002년 인도네시아에서 독립해 동티모르 민주공화국이 되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티모르섬에서 역사하시다

 

인도네시아의 3,000개 이상의 많은 섬들 가운데 한 섬인 티모르섬에서 지금 신령한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 불과 일 년 동안에 주 예수 그리스도와 생명적인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80.000여 명이나 되었다. 인도네시아의 총 인구가 1억 700만인데 반해서 티모르섬의 인구는 100만이다. 그 중 이교도와 믿는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수가 반반으로 서로 비등한 비례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 상당 수의 그리스도인들은 명의상 그리스도인들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이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기간에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사람들의 60%가 이미 교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한 저명한 그리스도인 지도자가 인도네시아에 방문하여 티모르섬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사에 관해서 말하기를 “이것은 두말할 여지없이 오늘날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의 성령의 최대의 역사입니다”라고 하였다.


이 성령님의 역사는 어떻게 일어났는가?


이 신령한 초원의 부흥의 불은 티모르섬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섬에서 1964년 늦가을에 「라투왈루」라고 하는 청년의 수고로 발화된 것이다. 이 청년은 주님으로부터 복음 전도의 사명을 받은 은사 있는 형제였다. 주님의 일을 하고 계신 그의 아버지도 처음에는 그의 이 소명 의식을 받아주지 않았지마는 후에 그도 주께서 그를 부르신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는 처음에 로티라고 하는 작은 섬에 가서 집회를 가졌다. 거기서 많은 심령들이 구원함을 받는 것을 본 후 그는 얼마 후 티모르섬으로 건너와서 쿠팡라고 하는 곳에서 <대 전도 집회>를 열었다. 이 집회에서 성령님께서 역사하신 결과로 한 전도단이 발족하게 되었다. 그 다음으로 「라투왈루」는 「쐬」 라고 하는 곳으로 갔다. 이곳은 티모르섬에서 제일 큰 도시였다.  그 곳에 도착하자 그는 그곳의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단히 갈망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서도 하나님의 능력이 기이하게 나타나서 많은 심령들이 주께로 돌아왔다.


선교사들이 기여하다


이 일을 수행함에 있어 다소 부절제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선교사들은 성령님께서 역사하고 계심을 알았고, 1965년 7월에는 인도네시아 성경학교의 한 전도단이 티모르섬으로 갔다. 메트말 쉬네만 선교사를 단장으로 한 이 10명의 성경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전도단은 「쿠팡」 과 「쐬」에서 전도대회를 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정결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하조하면서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구원의 확신을 가지도록 하여 주었다. 회개와 구원의 확신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이 전도 운동을 안정시키는데 있어 기여한 바가 컸다.

 

「쐬」에서의 전도 대회의 마지막 날에는 본 전도단이 전하는 말씀에 상당한 냉담을 보이던 「나흘 레오」 라고 하는 청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던 중 회개하기에 이르렀다. 성경학교 전도단이 쟈바로 돌아온 얼마 후 9월 하순 경에 주님께서는 그에게 트렁크 속에 내버려 둔 그의 주문을 없애 버리라고 명령하셨다. 「나흘」은 자기에게 주문이 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트렁크를 열었을 때 그가 전에 육상 선수로 있을 때 사용하던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 주문이 그로 더 빨리 뛰게 하여 준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주님은 그로 하여금 그의 모든 주문을 함께 생활하던 다니엘씨에게 갖다 바치도록 명하셨다.


그는 즉각 그렇게 하였다. 이틀 후에 「나흘」은 성찬식에 참석하여 그가 간증해도 좋으냐고 물었다. 처음엔 장로들이 그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었지만 「나흘」이 계속 고집하자 승낙해 주었다. 그가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다루셨는지를 간증하자 그들은 자신들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주문들을 다 바치기 시작했다. 이것을 다 모아 쌓아놓고 성찬식 때에 불에 태워버렸다. 수일 후에 이 간증들이 「쐬」에 있는 고등학교와 사범대학에까지 알려졌다. 이 학교들에 다니는 학생들로 그들이 가지고 있던 주문과 소설책과 유행가집들을 가져와 그것들을 모두 한데 쌓아놓고 「나흘 레오」의 명령에 의해서 불을 붙였다.


핍박이 부흥의 불꽃을 퍼뜨리다.


경찰들은 폭도들이 점점 심해진다고 생각하여 학교로 모여 들었다. 경찰들은 「나흘」이 이 폭동의 주모자라고 주목해서 그를 경찰서에 데려다가 때렸다. 그가 후에 간증한 것이지만 그는 그때 경찰들에게 구타를 당할 때 아픈 줄도 몰랐다고 하였다. 「나흘」은 석방되자 학교로 돌아와서 부흥운동에 그렇게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던 제일 전도단을 조직하였다.


이 전도단의 단원은 모두 29명이었다. 그들은 「쿠팡」이라는 지역에 가서 그들의 첫 전도 집회를 열었다. 그 곳에서 일하고 있던 한 전도인은 이 집회를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소극적으로 대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전도단과 함께 힘있게 역사하사 복음이 큰 능력으로 전파되게 하시고 구원얻는 자들이 생기게 하여 그들이 하는 일을 확증하여 주셨다.


부흥은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며 그들이 주문과 부적을 갖다 불에 태움과 동시에 일어났다. 이것은 인도네시아를 피로 물들게 한 공산당 쿠데타가 일어나기 바로 전날인 1965년 9월 29일에 일어났다. 삼일 후에 이 전도단은 「니키 니키」 라고 하는 동네로 갔다. 거기서 그들은 최대의 기적이 얼어나는 것을 보았다. 불과 두 주일 만에 9,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 이 구원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던 명의상 신자들이었다. 때문에 교회는 순화의 경험을 하기 시작하였다. 「나흘」과 함께 생활하던 다니엘씨는 이 부흥의 역사를 완전히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때 주님께 채찍을 받고 이 전도단에 협력하게 되었다. 곧 이전도단원의 수는 72명으로 늘어 각 전도단의 단원 수가 평균 6~7명이나 더 늘게 된 셈이었다.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한 전도단원은 일꾼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전도단원들 가운데는 무학자들, 전과자들, 그리고 세상의 표준에서 볼 때 복음전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무엇이 주님께 불가능하냐? 고전 1:27~29절 말씀의 사람들이 그 말씀을 동의하든, 하지 않든 이루어져야 할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성령의 눈부신 역사들


여러 전도단에서 들어온 사역보고들은 마치 사도행전 기사와 같이 들렸다. 한 전도단장이 보고한 바에 의하면 그리스도께로 돌아온 80,000명의 심령들 외에 15,000명의 심령들이 주님께로 또 돌아왔다. 이들은 대부분이 말라리아병, 암병, 나병, 소경, 벙어리...등등에 걸린 환자가 아니면 불구자들이었다. 그 중 어떤 이들은 40~50년간 병석에 누워 고생하던 사람들이었다.

 

또 다른 단장은 이러한 보고서를 보냈다. 쿠팡지방의 한 동네인 「암훠앙」에서는 사탄이 술(酒)과 물신(物神)숭배(어떤 물건에 신령이 깃들었다고 하여 숭배하는 사상), 부적과 우상과 같은 옛날의 관습을 통하여 역사하고 있다. 50년 간이나 교회와 정부는 이 세습을 없애버리려고 온갖 수단을 다 썻지만 결국 허사였다. 그러나 성령님의 능력은 그 세습들을 산산히 다 부셔버렸다. “진실로 주님은 찬미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도다!”


한 전도단의 사역보고 요약서


티모르섬을 비롯하여 그 인근 여러 도시에서 전도하고 있는 전도단들의 수가 현재 약 150개나 되는데 그 중 한 전도단이 16개월 동안에 한 일을 요약해 본다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이 전도단원의 수가 불과 5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의하라. 그 요약서는 다음과 같다.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시인한 자:29,457명(이 숫자 중 약 85%는 이미 명의상의 개신교신자들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15%는 이교도 이슬람교, 천주교, 제7일 안식일교, 여호와의 증인, 유교와 힌두교에 속했던 사람들이었다.)주문이나 우상을 버린 자의 수:12,725명 뿐만 아니라 이 한 전도단의 사역을 능하여 복음을 전할 사명을 받은 자가 383명이나 나왔다. 심지어는 불과 8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이들도 성령의 역사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


믿음으로 행하다.


이 신령한 부흥의 또 하나의 장렬한 면은 이 전도단들이 다 마태복음 6:33의 말씀대로 믿음으로 살게 되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필요를 충당해 주실 것을 믿고 있는 사실이다. 그들이 사람에게 구하는 오직 한 가지의 일은 기도하여 달라는 것이다. 이 한 전도단장은 다음과 같은 호소로서 그의 사역 보고서를 끝맺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분들께서 기도로 도와주시고 또 쟈바 성경학교에 계신 우리의 사랑하는 여러분들께서는 여러 조언으로 도와주심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성령으로 우리 모두를 도우심으로 우리가 겸손한 심령과 담대한 용기와 인내로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그의 깃발을 온 세상에 계속 전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WEC 선교사로부터 직접 들어온 보고서


금년 5월에 WEC 선교사 「밥 리틀」 씨는 「팍 옥타비아누스」와 함께 티모르섬을 방문했다. 그들의 방문 목적은 단순히 전도하는 것뿐만 아니라 1967년 늦가을에 이사하게 될 「밥 리틀」씨 가족의 이전 준비를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밥 리틀」씨는 그들의 방문기를 이렇게 전했다. “우리는 「쐬」에서 일주일, 「쿠팡」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해서 그렇게 갈증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을 나는 전에 만나본 일이 없다.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는 곳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팍 옥타비아누스」의 설교가 다 끝나기도 전에 일어서서 자기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울부짖기도 하였다. 「쐬」에서의 평균 일회 집회 시간은 4시간 반이나 되었으며 참석한 사람들의 수는 700명에서 1,000명을 헤아렸다. 우리가 체류하는 동안 「팍 옥타비아누스」와 「쐬」총독부 총독은 티모르섬 중앙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왕을 주님께로 인도하였다. 왕은 그가 가지고 있던 주문과 부적을 다 버리고 또 그의 과거 생활의 잘못되었던 일들에 대해서 변상을 시작했다. 최근에 있었던 집회에 나와서 그는 다음과 같은 간증을 하였다. “나는 왕이 되었을 때 기뻤다. 나는 자카르타 의회의 의원이 되었을 때 기뻤다. 그러나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모시던 어제처럼 기뻤던 날은 없었다”


「쐬」에서의 우리의 마지막 집회는 오후 4시부터 밤 9시 45분까지 계속되었다. 마침내 우리는 그들이 계속 찬송을 부르고 있기에 집에 돌아가라고 권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여러 단장들을 만나서 그들의 보고를 들었다. 그리고 다니엘씨와도 만나 교제를 가졌다. 다니엘씨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를 반사하는 사람이다. 나는 또한 「살린」 부인도 만났다. 이 부인은 그렇게 단순한 여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생활을 통하여 빛나게 하는 분이다.


우리가 티모르섬에 갔을 때 본 것  세 가지를 말한다면 첫째로 티모르 사람들은 마치 광야의 장막 같다. 그들의 외모는 오소리가죽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앉아 교제하여 보면 주님의 영광이 빛난다. 둘째로 그들은 아주 겸손하다. 나는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들처럼 그렇게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들은 만나본 일이 없다. 셋째로 그들은 단순하다. 이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몸가짐이나, 의복이나, 행동이나. 대화하는 것이 대단히 단순하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한 마음이다. 내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모든 것들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한결같이 찬송을 드리게 한다. 나도 이것이 성령님의 참되고 확실한 일이라고 여러분 모두에게 증거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늦은 비’를 맛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전에 없이 확신한다.


주님의 시간


「팍 옥타비아누스」는 하나님의 이러한 역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티모르인의 교회는 미지근한 신앙기를 거치고 있었다고 지적하였다. 티모르인의 교회는 영적으로 생명이 없었다.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미미했고 헌금 성적도 나빠서 모든 교회들의 궁핍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와 같은 상태는 그 곳에 있는 공산주의자들의 큰 영향 때문이었다. 그는 계속하여 말하기를: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 부흥이 공산주의자들의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에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티모르섬에 있는 교회들은 사람들로 꽉 찬다. 그리고 자리가 없이 밖에서 서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거기서 복음을 증거 하듯 그렇게 장시간 설교한 일이 없다. 사람들은 말씀을 더 듣고 싶어서 집회소를 떠나려 하지 않는다. 때로는 나는 단숨에 네 시간 동안 설교했다. 보통 전에 30분 내지 40분 설교를 하던 「쿠팡」에서 나는 8일간 집회를 하는 동안 매일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말씀을 전했다. 사람들은 자리를 잡기 위하여 오후 3시부터 모여들기 시작했었다. 아침집회는 오전 8시부터 시작했었다. 아침집회는 오전 8시부터 시작되어 12시까지 계속되었다. 어느 날 오후에 우리는 집회를 오후 4시에 시작했고 나는 6시까지 복음을 전하였다. 나는 음료를 마시려고 반시간 동안 말씀을 멈추었다. 그러나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지를 않아서 나는 다시 10시까지 복음을 증거 했다. 나는 이 간증을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정직한 마음으로 한다.”


「밥 리틀」 씨의 권면의 말씀은 이 보고서에 합당한 마지막 말이다.


“지금도 나누고 싶은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현재로는 족합니다. 찬미, 영화로운 찬미, 고귀한 찬미를 만왕의 왕, 만주의 주께 드리십시다!”


이 귄면의 말씀에 한 마디 더 부언하기 원한다. “주님, 주께서 티모르섬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것처럼 전 세계에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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