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신실하다" 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이것은 사람에게 쓰는 단어라기 보다는 하나님에게 씌여져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에는 "미쁘시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겸손은 믿음을 이루는데 아주 중요한 재료입니다.
겸손과 교만이 무엇인지도 교회 안에서 잘못 알고 사용되어집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이고 교만은 나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해가 안될 뿐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신실하시며 선하시다는 견고한 신뢰의 반석이 구축되어 있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약속의 언약에 관하여서는 이방인이었고 무엇을 요구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침묵하신 후 이 여인을 개에게 비유하셨을 때 오만한 사람이라면 분명 기분나빠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셨을 것입니다. 겸손한지.....(막 7:27-30)
백부장이 겸손했기에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테스트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예수님조차 놀라실 정도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었는데 바로 말씀에 대한 확신이 겸손이기 때문입니다. (마 8:8)
믿음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은 마음을 다해 하나님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믿음에 굳게 서는 사람은 비난을 받기 마련입니다. 세상적, 인간적인 효율성의 문제로 보면 어리석어 보입니다. 값 비싼 향유를 주께 부은 여인에 대하여 제자들은 허비라고 생각했습니다.(마 26:8)
말씀에 대한 100%믿음이 겸손입니다. 나를 의지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그때부터 우리는 교만해집니다. 우리가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 지치고, 힘들고, 답답하고, 상처받아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이유는 알고보면 나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해서든 해보려 하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 해보려고 했는데 나에겐 그럴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니 힘이 드는 것입니다.
내 할일은 내가 하되 내 힘을 의지하지 말고 예수님의 능력을 의지할 때, 포기하고 주저앉았던 그 여정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주신 소망과 소원도 주님이 이루셔야 가능합니다. 영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일이지만 우리의 일은 그것을 믿느냐 마느냐의 선한 싸움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를 부르신 주님은 신실하시기에 주께서 이루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