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 1:12-1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요 3:5-7) 위에 제시한 성경 구절들을 근거로 두 가지의 관계를 간단하게 설명해 보면 예수님을 영접하면 결과적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고 그 결과가 거듭남입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을 영접했느냐?’와 ‘거듭났냐?’는 서로 같은 의미의 질문입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그 순간의 행동보단 결과적인 상태를 더 중요시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언어적 차이점 이기도 한데 예를 들면, 우리는 ‘저는 결혼했습니다’라고 표현할 때, 그들은 ‘저는 기혼입니다’라고 표현합니다(I am married). 그러니까 우리는 그 순간의 사건 또는 행동을, 그들은 그 행동의 결과로써의 상태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아무튼 제가 미국에서 느낀 것은 거듭남이라는 단어가 정말 많이 쓰인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왠지 거듭남이라는 단어가 조심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단어인데도 불구하고 특정 단체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사용되고 있어서 꺼리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 너무나 중요시하신 거듭남이 일반적인 성도들에게는 조심스러운 단어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 반재경의 말씀 묵상에서...... 사실, '거듭남'과 '죄사함'은 신약(새 언약) 안에서 양대 산맥 비슷하게 정말로 중요한 진리가 아닙니까? 그런데 괜한 오해 사기 싫어서 성경에 분명히 나온 단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단어)조차 언급하기를 꺼려해야 한다면 이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세상에서도 이 '거듭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것과는 상관없이 영 딴판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그 사람 완전히 변했어."의 뜻으로 거듭남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연말 시상식에서 "더 훌륭한 배우로 거듭나겠습니다."라고 한다던가, 범죄를 저질렀던 사람이 "감옥살이를 하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거듭났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들입니다. 참 희한하게도 세상은 성경에 나온 단어들을 가져다가 쓰면서 그 단어들의 원뜻을 완전히 훼손시키곤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입니다. "여신 강림" "의느님" "냉면에는 겨자와 식초가 진리" "방언 터졌네" 이런 식으로 성경말씀에 나온 진리를 우스갯소리 삼아 사용하는데, 그냥 웃고 넘기지 뭘 그렇게 까다롭게 구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 신이 사단마귀라는 걸 기억할 때(고후 4:4),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진리를 나타내는 단어들이 거의 장난 비슷하게 되어버리니까요. 요약하자면, "거듭남"에 대해 처음 언급한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어떤 곳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또한 거듭남이란, 어떤 사람이 극적으로 변하는 정도가 아니라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그 사람(= 옛 사람)은 죽고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새로운 피조물(= 새 사람)이 위로부터 태어난 사건을 말합니다. 같은 사람이 변하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태어나는 사건입니다. 이 거듭남의 진리가 특정 단체의 시비나 세상의 원뜻 훼손 때문에 꺼려지거나 희석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