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약 2:16)
사도 바울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행위로 구원받지 않는다’고 말할 때 행위는 율법적인 행위를 말합니다. 그러나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행위’는 구원받은 이후의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로서 마땅히 드러내야할 삶의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입술로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자들에게 그 증거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습니다. 증거가 없는데 있다고 말한다면 그 믿음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자가, 가난한 형제에게 “평안히 가라”고 말하는 이것은 당시 일반적인 인사이나 특별히 구걸하는 사람들이 왔을 때,그들을 돌려보낼 때 쓰던 말입니다. 축복이라기보다는 이 자리에서 나가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헐벗고 굶주려 있는 형제, 자매에게 "네가 알아서 해"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귀신들도 알고 심지어 떨기도 합니다. 그러나 귀신들의 문제는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26절). 살아 있으려면 영혼과 몸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 둘이 분리되면 죽은 것입니다. 믿음과 행함도 그런 관계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바치는 것은 창세기 22장에 등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하신 것은 창세기 15장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15장에서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 비로소 그의 의로움이 입증된 것입니다.
겉이 일하지 않는 것은 속이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산 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고백에는 행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당신의 말대로는 행동하지 않을꺼야" 한다면 그에 대한 믿음은 거짓입니다. 참된 믿음은 예수님을 내 삶의 구세주와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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