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마 20:8)
이것은 은혜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해도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기준에 미달이기 때문에 누구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 비유를 잘못 생각하면 실컷 죄 짓다가 죽기 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천국에 갈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반응은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반응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가졌느냐의 여부입니다. 저녁이 거의 다 되어서 시장에서 할일 없이 빈둥거리다가 고용된 일꾼보다 새벽에 고용된 사람이 되십시오.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고, 선한 주인을 위해 일하는 특권을 받았으며, 한 시간만 일하고 간 사람과는 달리 주인과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를 두기 때문에 공평합니다. 누구나 동일한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의 근거는 하나님의 관대함,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은혜이지 우리의 행위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고용된 사람들은 그 선하신 주인을 더 많이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을 읽어보면 그들은 그것을 놓쳤습니다. 주인이 아니라 자기가 한 일에 포커스를 맞췄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인은 그들을 어떻게 부르셨습니까?
"친구여" (마 20:13)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면 이제 더 이상 종이 아닌 친구입니다.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요 15:15)
"나중에 온 사람들은 당신을 위해 한 시간 밖에 일하지 못했는데 아침 일찍 나에게 다가오시고 나를 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당신을 위해 더위를 참아가며 수고를 할 수 있었기에 행복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친구 아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