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갈 2:20)
우리의 삶을 주님께 헌신할 때, 즉 온전히 맡길 때, 우리는 “앞으로 주님만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주님을 위해 살겠다는 다짐은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을 위해 살 때 누구의 능력으로 사는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내 인간적 능력으로 주님을 위해 살려고 할 때는 많은 한계에 부딪힙니다. 그런데 인간적인 능력이 좀 더 강한 사람들은 평균적인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공을 부지중에 자기에게 돌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바리새인들이 저질렀던 실수(?)입니다.
그래서 좀 더 디테일하게 묘사하자면, 주님을 위해서 살지만 동시에 주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을 ‘예수님께서 우리를 통해 사시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우리 안에도 그리스도께서 사실 수 있다는 것이 이방인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은 오랫동안 감추어졌던 비밀입니다.
(골 1:26) "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신약 성도의 비극은 이렇듯 하나님의 성전이 된 후에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하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마치 요술램프의 요정처럼 생각하면서 필요할 때만 이용하려 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해 사신다는 것은 나의 뜻보다 주님의 뜻을 항상 앞에 놓고 나 자신을 주님이 쓰시는 도구로 매일 매일 내어드리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힘든 일이 아닙니다. 내 뜻보다 주님의 뜻이 나를 위해서도 항상, 언제나 더 좋기 때문에 그것은 손해가 아닙니다. 항상 더 좋을 뿐 아니라 주님의 뜻이 내 삶을 위한 최고의 계획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