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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의 의미

 level img 관리자
2025.11.21 06:16:49 :1856 
성경이 말하는 안식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히 4:10)

위 구절에서 말하는 ‘안식’은 일이 다 끝났을 때 하는 안식을 말합니다. 잠시 쉬어가는 것이 아니라, 일이 다 마무리되어 쉬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재판이 끝났다든지, 계약이 마무리되었다든지, 작품이 마무리됐을 때 쓰는 단어로, ‘완성’의 의미까지 들어있습니다.

따라서 이 ‘안식’은 ‘다 이루어진 것’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것이 영어로는 “It is finished!”인데, 그것은 ‘마무리가 되었다’, ‘완성이 되었다’라는 뜻이며, 완성되었기에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안식을 설명하면 종종 “그럼, 아무것도 안 합니까?”라는 질문이 자동으로 나오는데, 안식이 곧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이 부분을 잘못 해석하여 잘못 설명하거나 오해 하여 문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여러분께 이렇게 글을 쓸 때 뭔가를 억지로 짜낸다면 그건 저의 일입니다. 그러나 제 안에 이미 주신 계시를 풀어내는 것은 안식으로부터 나오는 일입니다. 둘 다 뭔가를 하긴 하지만 마음의 상태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안식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히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여기 ‘힘쓸지니’라고 번역된 단어는 영어로 ‘노동을 하라’는 뜻입니다. ‘내 일’을 쉬는 것이 안식인데, 안식에 들어가는 것에 있어서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 쪽에서 해야 할 ‘일’은 안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안식은 이미 된 것을 볼 때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됐다면 이제 안식할 일만 남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면 다들 앞서 언급했던 이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이제 아무것도 안 해요?”

아니요. 뭔가 하긴 합니다. 사실 안식에 들어간 사람이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나, 하는 일은 같습니다. 제가 안식하므로 이 글을 쓸 수도 있고, 안식 없이 이 글을 쓸 수도 있듯이 승리하기 위해 싸우느냐, 승리했기 때문에 싸우느냐, 이 차이입니다. 이런 개념(진리)은 구약에도 종종 나오는데, 그중에 안식을 위해 너무나 중요한 ‘바라봄의 법칙’에 대해 나누겠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얻기 위해 성 주변을 일곱 번 돌고 소리를 질렀던 이야기는 다 아실 것입니다. 그는 승리를 얻기 위해 싸운 것이 아닙니다. 승리를 이미 봤기 때문에 싸웠습니다. 관련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봅시다. 

 (수 6:1)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 여리고는 엄청나게 견고한 진이며, 현재 굳게 닫혀서 들어가고 나가고 하는 사람이 없는 상태입니다.

(수 6: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립니까? 방금 여리고는 굳게 닫혀있다고 했는데, 여호와께서는 이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까지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주었으니(과거형) 그것을 “보라”고 하십니다.
 
이쯤 되면 또 들려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넘겨주셨다더니 아니네.”
 
하나님의 시각과 우리의 시각 차이 하나님과 우리의 이러한 시각의 격차는 시간에 대한 개념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1절을 보면 아직 여리고가 여호수아의 손에 들어온 상태가 아닌데도 2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이미 주셨다고 합니다. 이것을 영적인 영역과 물리적인 영역으로 나누어서 설명할 수도 있고, 하나님과 우리의 시간에 대한 개념 차이로 볼 수도 있습니다. 

 영적인 영역에서는 이미 여호수아에게 주어졌으나 물리적인 영역에서는 아직 표출되지 않은, 즉 나타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에 제한받지 않으시고 카이로스라는 그분의 시간 속에 계시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의 개념이 의미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주셨고 그것을 알려주시면서 아주 특별한 명령을 하셨습니다. 바로 (이미 된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수 6: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이것은 우리의 물리적 눈으로 보라는 뜻이 아니겠지요. 물리적인 눈으로 본 상황은 암담합니다. 그런데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보라”고 하십니다. 무엇을? 이미 네 손에 넘겨준 모습을. 이 부분이 엄청난 계시입니다.
 
그리고 3절부터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아주 이상한 방법으로 여리고 성을 차지하라고 하십니다.
 
(수 6:3)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5)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이후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실행합니다(수 6:6~20).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여리고 성이 ‘이미 자기 손에 들어 온 것’을 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서 안식한답시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후 모든 행동은 하나님 말씀을 따라 안식에서 나오는 행동이었습니다.

 이미 가졌다는 것을 믿지 않는 자는 견고한 성 주변을 일곱 번 돌고 소리를 지르는 방법으로 싸우지 못합니다(인간의 종교적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대로 하는 실행이 순종입니다.) 

사도행전 10장을 읽어보면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 행10:29)

그는 자신의 육신적인 생각에 매이지 아니하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과 치유를 받는다는 구원의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다 해 놓으신 것을 전해 주라고 하는데 여러분은 왜 전하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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