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막5:36)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말은 단지 현상이 어떠하다는 것과 원망하는 말들 뿐입니다.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움은 믿음의 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을 이루지 못하며,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완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는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두려움은 사랑과도 반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일 4:18)
바리새인들이 가진 문제의 핵심은 두려움이라고 봅니다. 바리새인들의 경우, 그들은 종교 지도자로서 백성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인정받고 존중받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젊은이가 나타나 자신들이 할 수 없는 기적을 행하고 권위 있는 말씀을 전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들은 예수님과 자신들이 비교되어 보였을 것입니다.
‘종교’와 ‘지도자’는 권력에 의해 타락할 가능성이 큰 자리였기에, 하늘의 권위로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예수님의 등장은 그들에게 탐탁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였겠습니까? 예수님과 비교되어 자기들의 단점과 약점이 부각되기도 했을 것이고, 자신들을 지도자로 따라야 할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자 두려움이 앞섰던 것입니다.
이 두려움은 있는 그대로 인식되지 않고,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른 모습의 가면을 쓰고 나타납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이미 교만해져 있었기에 자기들이 두려움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대신 그 두려움을 율법을 어기는 자에 대한 당연한 분노로 여겼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힘이 있는데, 하나는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두려움이며,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상한 반응은 대부분 그 뿌리가 두려움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리새인들이 아니라 나 자신의 삶과 신앙의 성장입니다. 이를 적용해 본다면, 어떤 행동이든 그 원동력이 사랑인지, 아니면 두려움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기나 원동력을 성찰하는 일은 매우 본질적이어서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나를 이끄는 힘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지만, 현재의 내 모습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나를 억지로 끌고 갈 수도 있고, 죄책감이 나를 움직이게 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삶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입니까? 직장에 다니는 이유, 사역을 하는 이유, 가정을 세우려는 이유, 등 당신의 인생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두려움인지 사랑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고후5:14)
|